용면 두장리 선돌이야기
▲제보자= 허두영(남, 1940년생)
▲줄거리= 두장마을에 남문과 북문 마을 가운데 선돌 세 개가 있었는데, 북문에 마을 한가운데 한동주와 김순덕씨 집 부근에 삼각으로 있고, 마을 들어오는 명문기업 부근에 남문 선돌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마을에 큰 돌과 돌다리로 생각되는 것들을 모정 옆에 갖다 놓았다.
▲이야기= 선돌이 두장리로 봐서 북문이라 해가꼬, 동네 가운데가 하나 서 있었어요. 아조 우리도 올라가서 놀고 그랬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올라가서 놀고, 그 부근에는 전, 논이 아니라 전으로 콩밭이라 해서 밭이 있었다. 이렇게 선돌이 있었어요.
분명히 있었고 그 부근에 지금 파면 나올란가 모른디 있었고, 그 다음에 우리가 오시다 보면 명문기업이라고 두장리 밑에 올라오다 보면 거가서 그 때 양대수 즈그 아버지가 살았는데, 옛날에 거기도 선돌이 하나 있었고, 남문이라 해서 선돌이 하나 있었어요. 근디 이 경지정리 허면서 그 돌이 지금 없어져 부렀어요.
근디 거 묻어 부렀는가 어찌는가 모른디 그 부근은 안 디 인자 묻혀 부렀는가 모르죠. 글고 인자 동네는 아까 지금 형태를 큰 거북이 형태 거북이 모양은 안 생겼지마는 넓덕한 돌이 집과 집 사이에 것이 하나 놓아진 게 있고, 또 그 뒤에는 제가 그 뒤에 하수구를 수리 하면서, 이과장집(이병로)조금 못가서 파니까요. 그 독이 아주 큰놈은 손을 못 대고 그 우게다 하수구 해 놓고, 그 다음에 큰 놈은 제가 트랙터로 실어다가 지금 모정 옆에 놔 두었어요. 시정 우게, 넓적 헌 독 고놈을 내가 갖다 놔 두었어요 그리고 옛날에 돌다리 형태를 내 생각대로 다섯 개를 찾아서 놓을라고 했는디 다 못 찾고 우게치(위에 것) 하나만 찾아다, 또 그 돌다리 다섯 개 놓아져 있고, 그것뿐이에요.
(조사자 : 모정 앞에 다 있어요. 그 돌들이?)
모정 우게 다 내가 갖다 놨다니까.
넓덕한 큰 돌도 있고 이게 저 징검다리라고 그러잖아요.
고것도 동네 뒤에서 건너 다닌 놈을 형태를 남기기 위해서 내가 갖다 놨는디 네 골목은 다 찾을라고 보니까 옛날 사람들이 그 냇가 가상에 축대를 쌓으면서 밑에 다 넣어 부렀드라구.
(조사자 : 그러면 이 동네는 평야지대인 것 같은데 돌이 많았어요?)
글쎄요. 고것이 나도 의심이 되는데, 지금 동네 가운데 부분에 가면 시방 내가 아까 거북이 형태 돌이 있다고 그랬죠. 그 앞집에도 집 짓고 살 때, 부엌 옆에 가서 많이 있었는디, 묻혀 버렸는가 지금 남아 잇는가 그걸 모르겠어요. 집아네 그 부근에가 있드라고…
(조사자 : 그러면 거북이 같은 돌은 누구네 집에 있고. 큰 돌은 누구네 집과 집 사이에 있어요)
아니 근게 근게 아까 큰 돌이나 거북이나 똑 같은 이야기인데, 고것이 지금 한동주와 김순덕씨 집 사이 문 앞에가 담을 요렇게 있다며는 삼각이 여가 딱 있어요. 가시면 보실 수 있고…
앞네 뒷네 돌다리와 쉬나무숲 이야기
▲제보자= 허두영(남, 1940년생)
▲줄거리= 앞에(안네)또랑에 쉬나무는 물을 방어하기위해 하천가에 쭉 심었고, 앞네 뒷네 사람들이 건너다니고 빨래도 했던 돌다리가 다섯 개가 있었다 한다. 새마을사업 개발을 한다며 다 사라지고 한곳만 재현하기 위해 돌다리 한 곳만 놓여져 있다. 쉬나무 열매를 항공기름 짜는데 사용했다 하며, 부잣집은 소금 싣는 구르마를 이용해 돌 사이로 다니기도 했다 한다.
▲이야기= 또랑이란 마을 그 부락(마을)사람들이 이어서 만든 거 같애요. 앞네, 앞냇가, 이렇게 이야기 했으거 아니에요. 근디 거기를 이쪽저쪽 사람들이 옛날에는 다닐 때는 돌다리를 다섯 간 데가 놓아졌어요. 돌다리 그걸 주로 건너 다녔고, 또 그물은 와산이다 저기 저 비호재에서 흘러온 물이거든요. 와산 그 물이 고리 흘른 물인데 장마만 지며는, 이쪽 저쪽으로 못 나가지 않습니까? 이 물이 거기서 건너와서 때리니까 이쪽 사람들이 제방을 한 2m높이로 돌을 쌓았어요.
아까 내가 얘기 했죠. 앞네. 뒷네. 긍게 이쪽 사람들이 쌓았어. 쌓으면 그 우게다 나무를 심었는가 봐요. 근디 그것이 팽나무, 아니 팽나무가 아니고 쉬나무라고 우리는 그렇게 듣었어요. 쉬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거든요. 그랴꼬 열매가 무슨 역할을 하냐고 물어 봤더니, 옛날에 우리나라 항공이 막 시작 했을 때 외국에서도 기름을 짜서 항공 기름을 썼다 그런 이야기를 하대요. 그때는 그 나무 요만씩 했어요. 근디 인자 새마을 사업하고 개발하다 보니까 그 독을 (돌을) 다 떼밀어 불고, 옹맥을(옹벽을)쳐서 지금도 독 있는데 부분 있는데 다리를 놓고 건너 다니제. 다리를 직접적인 다리를 못 건너다니고 그 나무는 다 없어져 부렀어요.
한쪽에 쭉 심어져 있어요. 우리가 그 일곱 여덟 살 묵을 때에는 나무에 올라가서 매미도 잡고 그렇게 했어요. 없어져 부써요.
긍게 인자 동네가 안네 도랑이 있어놔서 이쪽 사람이 요리 건너다니고, 이쪽 사람들이 요리 건너다니고…
물론 그 또랑가에 앉아서 방망이로 빨래도 두들고, 빨기도 하고 또 비만 많이 오면 여그가지 건너다니고 주로 냇갓이 부잣집 사람들은 돌다리가 있어도 돌 사이로 가서 골목으로 들어가고 그랬죠. 골목골목으로 골목이 지금 하나. 둘. 셋. 마을 끝까지 해선 네 개, 다섯 개 정도 돌다리가 놓아져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