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면 노천마을 수호신 입석
▲제보자= 한동님(여, 1954년생)
▲줄거리= 노천동의 입석은 또랑(노천)을 사이에 두고, 사람 키높이의 검은 빛의 돌 두기가 세워져 있었다. 밤중에고 입석에 오면 마음이 안정이 되는 마을 문이요 수호신으로 생각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제가 시집 온 지가, 열여덟에 왔거든요. 시집을 열여덟에 왔을 때, 문이 두 개가 있었어요. 요쪽 저쪽에 두 개가 있어가꼬, 시집 올 때는 저는 잘 모르죠. 근데 문이 그렇게 있다고 허드라구요.
근데 그 동네를 지나오면 거그까지 오며는 딱 넘어서면 무서운게 없어져요. 위에만 들어서며는 옛날에 여기서 살다가 광주로 일을 다니러 다녔어요. 그랴꼬 밤에면 통 오고 그랬거든요. 늦게 한 아홉시 돼서 오고 그랬어요. 그러며는 거기가 거기까지 올 때가지는 무서워요. 긍게 돈을 들고 10원짜리를 들고 오면서, 그걸 시고(세고)여기까지 왔어요. 석현리서 여기가지는 와요. 오며는 동네 들어오는 입구에 딱 들어오며는 무서운 기가 없어요.
(조사자 : 아까 문이라 하셨는데 돌보고 문이다 하셨어요?)
예. 돌보고 문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동네 입구에 문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조사자 : 그들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했다 할 수 있네요?)
예. 마을을 지켜주는 옛날에 피난민들도 노천동에 들어오면, 노천동이 감싸 주고 밑에 동네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돌아 가셨데요. 근디 노천동은 사람을 이렇게 들어오면 감싸 줬는갑데요. 그런 거시기만 있었다 허드라고요.
(조사자 : 또랑을 경계로 해서 양쪽에 있었다고요?)
예. 하나는 없어졌어요. 지금은 없는 것 같애요. 없어요. 길 내면서 그게 없어진 것 같아요. (전에는)있었어요. 높이가 어른 키로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자로죽허니 생겼어요. 약간 좀 까만색으로 보이지라. 검은 색깔 비슷해요.
(조사자 : 마을에서 나갈 때, 얼마 정도 떨어져 있나요?)
500m 그 언지나 될 것 같네요.
(조사자 : 무슨 제를 지내거나 인사를 하거나 돌을 던지거나 그런 것 없었나요?)
그런 것은 없어요. 인사는 안한데 지나오면서 “아 여그 지나오면 진짜 맘이 편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들어 와요. 막 무섭고 타에서 오다가 거기만 딱 넘어서며는 안정감이 와요.
소타쟁이, 물공구리보, 먹굴, 똥뫼
▲제보자= 김정묵(여, 1940년생)
▲줄거리= 산이천 마을 지형물로 소타쟁이는 고개인데 도깨비가 자주 나왔으며 몽골구리보는 마을 옆 보, 먹굴은 껌껌허니 주위 산이 둘려 싸여 있었던 곳으로 도적들이 많이 있었으며, 산이내 고분 자리는 똥맷등이라 불렀으며 동답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쪼금 고개가 있거든요. 그니까 고개. 옛날에는 저녁에는 사람이 말하자면 우리 어렸을 때부터 다닐라면 좀 무섭고 그런다고 안가. 잘 안가고 그래갔고 그런 데야.
(조사자 : 누가 귀신 본 사람이 있을까요?)거그서)
예, 귀신 도깨비 봤다요. 도깨비가 사람을 홀려서 디고 가. 그래서 웬지 소타쟁이만 허면 서로 무사허고 글로 잘 안가고 그랬어.
우리 마을 아니 손오실에서 모냐 영암 양반이 고렇게 홀렸다고 하드만, 영암 양반.
어떻게 홀렸는지 모르지만 영암 양반이 장에 갔다 오다가 고렇게 돼야지 고기 사갔고 온 디 어디까지 디꼬 가부렸다고 그때. 거 모냐 삼밭 밭 있는 디로? 질 안 왔었을 때 시방 와룡공장 있는 디 고리. 말하자면 지쳐서 자부러져 있었어.
거그도 모냐 무섭다고 했어. 몰공구리보. 몰공구리여 몰공구리. 요그요, 나무 옛날 숲 시작한데서부터 그 보가 몰공구리보여.
먹굴은 요안 요안 미림목재 있는데 먹참 맹끼 생겼응까ㅔ 먹굴이라고 헙디다. 거그 가면 껌껌허니 그렇게 생겼어 무섭고 숲처럼 껌껌해요. 지금은 조깨 덜혀 산이 싹 싸여져갔고 다.
(조사자 : 굴처럼 그런 거예요? 그럼 거기가 도적들이 많았어요?)
도둑들. 항, 그전에는 그랬다우. 그래서 먹굴이라고 그랬다요, 도둑놈도 씨앗고 그런게
지금은 공장 생겨 부렸어, 미림산엄. 방앗간 지어 불고 소투쟁이 있는데 다 방앗간 짓고
우리 동네는 6·25사변 때도 사람하나 안 상하고, 거 난리 통에도 참 동네 인심 좋아가지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이 살아왔어.
(조사자 : 산이내 고분이 있다는데 고분, 오래된 무덤 큰)
고건 모르겠는디 똥맷똥 말하는가? 똥맷똥 없어져 부렸어. 없애 부렸어. 논 만들어 부렸어, 그때는 논에 허천 나서 동네 논으로 만들어 갔고 고놈 파 내불고 동네 논 맹글었어.
(조사자 : 아, 이름이 똥맷등인 거예요?)
응, 나무가 요리 요리 서 있는 것이 맷똥처럼 섰은 게. 높아. 산이 요렇게 있는데 뺑뺑 둘러 소나무가 있어. 거다 시정을 지까 어쩌까 했는디 고걸 파내 불고 논을 쳐놨제.
(조사자 : 그래가지고 동답이 돼어 버렸어요?)
응.
공비를 피한 이야기
▲제보자= 한동님(여, 1954년생)
▲줄거리= 외추 마을에 가마골로 가던 공비가 쌀이랑 곡식을 가져가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몰래 숨고 노인들이 짐을 짊어지고 가는데 임약방에 불이 나자 동네 사람들이 내려와 불을 끄는 단체심이 좋았다. 짐을 지고 노인들은 일부러 개꼴창으로 넘어져 마을로 되돌아 오는 꾀를 내어 마을에 피해가 없었다 한다.
▲이야기= 옛날 공비가 오리라고는 맘을 안 먹었고, 거리가 머니까(멀다) 근디 그놈들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마을까지 와서. 지기들 필요한 거 쌀 같은 거 돌라 가지고, 노인들 그때는 젊은 사람들은 전부 산으로 피난 가 불고, 노인들을 시켜서 짐을 짊어지고 가요. 그놈만 갖고 갔으면 괜찮은디, 바로 요집 초가집이에요.(외추정 옆에 집)
그때는 임약방이라고, 노인이 약방 했어. 한약방이 초가집인디, 아 불을 질러 불고 가부렀어. 거따가 임약방 집에 다.
글면 인자 반란군들이 대오실이나 갔을까 짐작으로. 요 양반 작은아버지가 용감해. 이장 작은아버지가 이상수씨라고. 요놈 비상종을 쳤어. 긍게, 동네 사람들이 그 정신에 와가꼬 불을 껐다고. 긍게로 우리 마을이 단체가 좋소 허허(웃음)
대단허제. 짐을 지고 간 사람들은 가다가, 개꼴창으로 궁글어가꼬 도망쳐서 왔어. 그랴꼬 희생자는 하나도 없었어요.
개꼴창이 대실 뒤에, 대실 뒤에 다락골이제. 고놈들 따라 간 척 허다가는 궁글어부렀어. 고놈들도 자기들 날 새기 전에 갈라니까 바뻐. 바쁘니까 찾도 못 허고 가부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