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설화 및 전통 이야기(2022-3월20일자)
천년 담양설화 및 전통 이야기(2022-3월20일자)
  • 자료제공=담양문화원
  • 승인 2022.03.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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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면 대실마을 유래
▲제보자= 정병문(남, 1927년생)
▲줄거리= 금성면 대곡리 대실마을의 지명 유래와 마을 입향 성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 대실마을은 예부터 띠를 두르고 있어야 좋다는 말이 전해옵니다. 그래서 마을을 띠처럼 두르고 있는 대숲 양지바르게 앉아있다고 합니다.
띠 대(帶)자 열매 실(實)자 마을 이름대로 되었다고 그래요. 1984년 88올림픽 도로가 마을 앞 서남쪽으로 통과하니 대곡마을 앞과 뒤 옆 모두가 띠를 두른 듯 사방을 에워싸서 지명대로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 명종 때 진주 하씨가 처음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 후 고령 신씨가 입향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습니다. 그 이후 남원 윤씨, 초계 정시가 현재까지 살고 있습니다.
(조사자 : 선생님은 몇 대조부터 사셨어요?)
증조 때부터 여기 살았어요. 전북 순청서 증조할아버지가 살다가 족보만 들고 오셨어요. 옛날 한문 선생질을 했어요. 그 할아버지가 남원 유씨한테 장가를 가셨어요. 그래서 터를 잡아서 산 것이 나까지 4대째 살고 있어요.

금성 대실마을 당산제와 홍골 약수
▲제보자= 정병문(남, 1927년생)
▲줄거리= 대곡리 당산제는 마을에 옹달샘이 없어서 봉서리에서 떠다가 시암굿을 지냈으며, 홍골에 호랑물이라는 이름난 폭포수는 땀때기나 나병자도 나았다는 영험한 물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이 마을에는 옹달샘이 없어. 마을 넘어 뒷산에 옹달샘이 있어. 봉서리 옹달샘물을 떠다가 시암제를 지냈어요.
(조사자 : 이 마을 물이 아니라 봉서리 옹달샘 물을요?)
시암제 할 때 여기는 대곡리고, 옹달샘 물은 봉서리에서 떠다가 시암제를 모셨어요.
(조사자 : 어디서 시암제는 모셨어요?)
그 물을 떠다가 우리 시암에서 지냈에요. 지금은 안 지내. 정월 열 나흗날에 당산제 모시고 보름 세고 그랬어요. 북치고 장구치고 그랬어요.
한편, 여그 호랑물이 있어요. 물을 맞고 옛날에 나병자가 나았다고 그래요.
(조사자 : 물이 떨어지는 폭포 같은 거요?)
그 물을 맞고 먹고 그랬어요. 지금은 말라부렀어. 안 나와.
(조사자 : 거기 이름이 뭐에요?)
홍골. 약수였죠. 그놈을 받아서 상수도 물로 쓰다가, 그것이 부족하니까 또 파고 그랬어. 상수도 안했으면 지금까지 나올 텐데. 항상 나와서 빨래도 하고 그랬는디 상수도 한 뒤로는 물이 안 나와부러. 여름에는 홈대를 놓고 대도롱으로 맞으면 땀때기 난데 좋다고 그랬어요. 바우에서 물이 나와.

금성 덕성마을 배 형국과 샘이야기
▲제보자= 김종수(남, 1939년생)
▲줄거리=마을이 배 형국이여서 옛날에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았으나 물 부족이 심하자 한때 우물을 팠으나 물이 자서 다 폐쇄하고, 저수지 밑에다 상수도 시설을 해서 1급수인 물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 배 형국이라구. 배 바다에 떠다니는 배. 왜 그러나면은 이 가운데가 지금 이 회관으로부터 이리 쭉 등이 있어요. 능이 그러고 양쪽에는 야차와 이렇게 쭉 높으고 이렇게 되았서. 긍게 배 형국이라 그래갔고 옛날에는 절대적으로 마을에서 지하수를 못 파게 했어. 자 배에다 구녘을 뚫어 불면 배가 바닥에 가라앉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러자 이것이 점점 한 사람이 파고, 또 한사람이 파도 별 크게 지장이 없으니까. 인자 팠지.
샘은 옛날 샘이 두 군데가 있었는데 이 큰 부락에서 두 군데 있다 보니까. 나도 기억은 나는데 아침에 새북에(새벽에) 새댁 갓 시집온 며느리들이 바로 60년대니까. 6·25전후니까. 아침에 세 시면 앞장서서 물을 가서 퍼와. 샘이 적으니까.
샘 이름은 아랫시암이라고 허고, 가운데 시암이라고 허고, 아니 저기는 가운덴데 저기는 뒤 감지 우물샘 그랬제
(조사자 : 뒷 감지요?)
예. 뒤감지 어 잘 알으시네. 뒷감지는 마을 뒤편에가 있어 가지고 사투리 말이제. 근데 거기는 야차왔어. 한 깊이가 2미터 정도 밖에 안 돼야. 긍게 끈이 짤라도 인자 뜬대. 이 마을 중앙에 있는 시암은 한 십미터. 글도 거 두룸박질을 허고 서로 더 가져 갈라고…
그러면 빨래는 냇가 요 앞이나 뒤에나 냇물에서 물이 흐르니까. 거기 가서 얼음을 깨고 겨울에 발래를 거기서 했어. 그때에 지금 이런 분들이 이 밑에 다른 분들이 그분들이여 시집살이 허제 아 고돼야.
넉넉한 것이 하나도 없어. 자 곡식이 넉넉 허까 우물이 풍부허까. 넉넉한 것이 없었어. 긍게 굶주리고 살았다 이거제. 이 지하수를 파서 어떻게 헌께 물들이 모다 짭잘해라우 긍게 여가 바닷물이라 긍가 몰라요 짜요. 지금도 물이 짜요. 이 능에서 판 것은 짜 짭짤 혀, 건건 혀.
(조사자 : 그래서 더 바다 배라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지하수가 전체적으로 지금 폐쇄 되았어요. 간이 상수도를 2001년도에 막아가지고 거 뚫어가지고 바로 저수지 밑에다 팠어. 저수지 위에는 누가 농사 하나도 없제. 경작하는 필지 하나도 없제 물이 깨끗허제. 저수지 물 거기에서 바로 밑에다 바위만 183미터를 거기다 뚫었어. 그때 당시 담양군에서 간이 상수도 다섯 군데를 팠는데 이 물에 대해서 측정을 했어요. 검사 1급 판정을 받았어요. 수질검사 1급 판정을 받아가지고 그때 당시 파가지고 제가 그때 마을일을 봤었지만은 이 물을 받아가지고 6개월 이렇게 두어봤어요 회관에다.그대로 이끼 하나가 없어 똑 같애.
근게 다른 사람들은 이 물을 통에다 받아 가지고 차에다 실고 다녔어. 몇 개월 되아도 그렇게 변함이 없이 그대로 있으니까. 정말 물은 좋다 그랬제 맛 좋고…

금성면 봉서리 너머시암 장군시암
▲제보자= 최병천(남, 1947년생)
▲줄거리= 대판마을에 고지산 밑에는 물이 언덕 양쪽에서 나와, 언덕을 넘는다 하여 너머시암이라고 불렀으며, 또한 마을 너머에 장군시암이 있어서 마을에 장군이 나왔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대판이란 마을은요. 고지산이 있어가고 명산 줄기를 타고 쭉 흘러나온 것이 너머시암이 있어요. 바로 밑에 가 너머시암이 있어 가고 그 물이 하도 1급수예요. 그렇게 좋아요. 광주 사람들도 오셔 가지고 물을 떠가요. 여기서 가끔 또 그리고
(조사자 : 왜 너머시암이라고 했어요.)
이쪽에요 있고, 이쪽에도 있으니까요. 양쪽에 물이 있으니까, 언덕을 넘어서 너머시암. 그 물줄기에서 물이 흘러 나온 디, 이 물도 똑같고, 이 물도 똑같다 해서 다 1급수 물이에요. 아주 내가 물을 측정해 봤는데요. 그만치 좋은 물이 없어요. 아주 1급수. 그래서 너머시암이라고 거기는 부르짖고 있습니다.
글고 또 아가씨들이 목욕 많이 온 데고. 그래서 글던지 그 마을 아가씨 들은 다 예뻐요. 쳐다만 보면 남자들이 줄줄 따를 정도로, 글케 다 예뻤어요. 늘씬해 가지고 아조 미녀들(시집)다 잘 갔어요. 인물이 예쁘니까 줄줄 따르죠.
그리고 또 고지산은 명산인디 명산 줄기를 딱 다라 오며는 뚝 뭉친 데가 있어요. 뭉친 데 집을 져 가지고 장군이 나왔어요. 인자 별 세 개 달았는가, 모르겄습니다. 두 개 달고, 31사단 하시고, 또 세 개 달았을 거라고 난 믿고 있습니다.
(조사자 : 그러면 너머시암 광주사람들 오고하는데, 이쪽 사람들도 떠다 먹었어요?)
예. 식수로 쓴 게 아니라 빨래터, 옷 빨고 그냥 막 저기 하는데 허시래기 같은 거 씻고 옛날에는 처녀들이 그냥 얼른 안 보며는 옷 벗고 씻고, 벗어 놓고 하면 고놈도 훔쳐 가는 일도 있꼬 예. 밤에면 그러면 옷 벗고 막 옷 찾는다고 따라온 일도 있고, 나락 밭으로 도망간 일도 있고, 그런 일이 있어요. 전설에(웃음)골케 말씀드려야제.
(조사자 : 식수로 쓰는 물은 어디 물이에요?)
셈이 또 바로 요 그 밑에 산 밑에 가 있어요. 그거는 우물, 인자 동네 우물.
(조사자 : 너머샘이 두 개가 있고, 우물이 또 하나 있었고, 그럼 총 세 개가 있었네요.)
예. 여기는 빨래터. 그걸 먹기도 하고 식수로 지금은 광주에서 오셔가꼬 가끔 물 떠가고 가신디 여러 번 봤어요. 통 가져와가꼬
옛날에는 인자 빨래터. 긍게 바우 같은 깔아 놓고 줄줄이 앉아서 빨래하고 또 음식도 동네잔치 돌아오면 거기서 씻고 그렇게 살았어요. 샘은 또 동네 샘은 따로 있어요. 거기는 물 옴서감서 다 먹어요. 지금도 먹고 있어요.
예 또 장구시암이라고 있어요. 장구시암 바로 마을 너매(넘어)그 장구시암에는 바로 우게 가 묘를 쓰면 장군이 나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장군시암. 장군이 거기서 물 먹고 목 축인다고 해서 그랴꼬 장군시암이라 헌디. 우리가 알아듣기에는 장구시암, 그냥 그리서 과연 거기다 묘를 스고, 그 손이 나온 것이 여그 장군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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