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퇴비 생산하려고 양돈을 시작했습니다”
고서면 주산리 농가 주축 ‘초록영농법인’ 설립
‘무농약’ ‘자가퇴비’ ‘태평농법’으로 농사짓고
여기서 얻은 농산물 먹이로 이용 ‘경축순환’ 실천
백근자 씨는 결혼 전 유명화장품회사에서 피부관리사로 일했다. 이 무렵 군대에서 갓 제대한 동갑내기 홍인표씨가 이 회사의 운송팀에 들어왔다. 홍 씨의 꿈은 농사꾼이었다. 광주 모 대학 농대에 다니다가 군에 입대했는데, 제대 후 곧장 복학하지 못하고 이 화장품회사에 취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고, 그 사랑이 발전하여 결혼으로 이어졌다.
“가톨릭농민회에서도 열심히 활동한 남편의 꿈은 농사꾼이었습니다. 사정상 잠시 화장품회사에 다니고는 있었지만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직장을 그만 두고 고향 주산리로 들어왔습니다. 주산리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부모님이 오이, 딸기, 수박, 토마토 시설원예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고향으로 들어온 첫 해에 일반 시설원예에서 한 단계 발전한 수경재배를 시작했습니다.”
1991년, 무정면 공기석씨와 백 씨 부부 2농가가 담양 최초 시범사업으로 수경재배를 시작했다. 작물은 상추, 토마토, 오이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고생에 비해 소득은 별로였다. 당시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족하여 시장거래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몇 군데 식당을 주거래처로 납품을 했다. 이런 식의 판로였기 때문에 생산한 농산물을 처리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3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났더니 농사 자체가 싫어졌습니다. 부부가 의논한 끝에 아예 집과 전답을 정리하고 도시에 나가 직장 생활을 하기로 했습니다. 광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매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자 농사짓고 살라는 팔자인 모양이다 생각하고 2개월만에 고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전라북도 신태인에 사는 한남용씨를 찾아갔습니다. 한남용씨는 우리나라에서 포도 유기농으로 최고의 권위자입니다. 1994년, 신태인에 사는 한남용씨를 만나고 온 뒤 곧바로 5,000평에 25동의 시설원예를 시작했습니다. 무농약 친환경농업으로 딸기와 포도를 재배했는데 주위에서 미쳤다고 했습니다.”
주위사람들이 예상하고 걱정했던 대로 어려움이 따랐다. 무엇보다도 판로가 문제였다. ‘가톨릭 우리 농’, ‘한마음공동체’ 등 소비자생활협동 단체에 납품을 했다.
“거래를 하면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의 행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농산물 출하가 많아지면 농민들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습니다. 소비자 없는 생산자가 어떻게 있을 수 있고, 생산자 없는 소비자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초록영농법인을 설립하게 된 겁니다.”
고서면 주산리 농가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초록영농법인’의 설립 취지는 ‘친환경농업 실현’이다. 초록영농법인은 친환경농업의 첫걸음으로 토양을 살리는 일에 주력했다.
“토양이 건강해야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해낼 수 있습니다. 친환경농업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지구를 살리는 일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정부에서도 친환경농업 활성화를 위해 농자재 등 많은 지원을 해 주고 있는데 이제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적 지원보다 다양한 교육 같은 것을 통해 농사꾼들의 생각을 바꿔주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백 씨는 친환경농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 농업도 유럽처럼 ‘가족농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단위 면적을 경작하려면 시설투자비가 증가하고, 기계영농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싼 기계를 사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대개는 빚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백 씨는 진실한 마음으로 땅을 대해도 빚쟁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인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멜론 비닐하우스 18동이 모두 물에 잠겨 한 개도 건지지 못했다. 백 씨 부부는 1억여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던 것은 당시 88고속도로 확장공사를 했던 D건설회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건설회사의 명백한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소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이 힘없는 농민들이 큰 회사를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결국 패소해서 비닐 한 조각도 배상받지 못했습니다.”
2007년에도 폭설로 인해 포도, 딸기 등 하우스가 무너지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었다. 그렇지만 백 씨 부부는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다시 일어섰다.
2006년, 백 씨 부부는 양돈을 시작했다. 믿을 수 있는 축분(畜糞)을 얻기 위해서였다. 백 씨는 유기농의 완성 과정에 대해서도 간략한 설명을 곁들인다. 첫번째 단계는 ‘무농약’ 농사인데, 이때는 퇴비(유기질비료)와 화학비료를 겸용한다. 여기에서 한 단계 앞서가는 것이 유기농인데, 친환경농약을 사용하고, 퇴비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퇴비가 아니라 농가에서 직접 만든 이른바 ‘자가퇴비’를 사용한다. 마지막 단계는 ‘태평농법’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땅에 뿌리거나 심은 다음, 거름이나 농약도 하지 않고, 태양, 바람, 비 같은 것에 맡겨놓고 태평하게 기다리는 농법이다.
“공장퇴비에는 종이공장에서 나오는 슬러지가 섞이기도 하고, 항생제나 성장호르몬을 과다하게 투여한 가축의 배설물이 섞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축분을 생산하기 위해 돼지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백 씨를 통해 ‘경축순환농업(耕畜循環農業)’이라는 걸 새로 알았다. ‘경종(耕種)’은 토양에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고, ‘축산(畜産)’은 가축을 기르는 것이다. 경종농업에서 얻어진 것은 가축의 먹이가 되고, 축산에서 나온 배설물은 경종농업의 거름이 된다. 이것이 바로 경축순환농업인 것이다.
처음에는 어미 4마리를 포함해 흑돼지 30마리로 양돈을 시작했다. 그들이 기르는 돼지는 ‘초록흑돼지’라고 이름 붙였다. 흑돼지는 하얀돼지에 비해 생산성은 낮지만 병에 강하기 때문이었다. 축사는 자연광선과 바람이 많이 들어오도록 개방형으로 지었다. 시멘트 포장을 하지 않은 흙바닥에는 톱밥, 왕겨를 깔았다. 사료는 주로 잔반을 먹였다. 여기에다 깻묵, 밀기울, 효소제, 황토 같은 것을 섞여 먹였다. 항생제 대신 봉침(蜂針)을 사용했다. 1년에 한 번씩 코, 배, 꼬리 등에 봉침을 놓으면 병치레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번식도 자연교배로 하고 있다. 백 씨는 ‘자연’의 반대는 ‘인공’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돼지를 기르고 있다고 말한다. 2008년, 초록흑돼지는 담양군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무항생제 축산 인증을 받았다.
현재 백 씨 부부가 기르고 있는 초록흑돼지는 1천300여 마리이다. 수시로 분만을 하기 때문에 24시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농업 해서 부자가 되면 좋겠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 부부는 땅을 건강하게 살리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데 큰 기쁨을 느낍니다.”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