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44년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무정식당 주인 김용준씨
자부심을 갖고 장사하기에 자존심은 팔지 않습니다” 음식을 파는 사람의 첫째 덕목은 양심입니다 양심을 지켜야 자부심이 생기는 겁니다 양심을 저버리면 자존심을 헐값에 파는 꼴이니까요 부자 팔자이니
아무개가 어떤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면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었는데,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렇지만 돈을 쓸 줄 안다고 해서 모두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더 큰 이익을 내다보고, 아니면 패거리를 만들어 골목대장 노릇이나 할 꿍꿍이셈으로 돈을 쓴다면 제 돈 쓰고 욕을 먹는다. 정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자기보다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이라야 좋은 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소문이 난 무정식당은 장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44년이 된다. 아버지 김삼태(84)씨가 시작한 장사를 아들 김용준씨가 이어받았다. 아들이 이어받은 지는 20년이다.
여름철을 맞아 무정식당은 한창 성업중이다. 종업원이 30명이 넘는다. 식당이 잘 된다는 얘기다. 종업원 중에는 20년 넘게 일하는 사람도 있다. 주인들의 맘 씀씀이가 괜찮기 때문에 20년 넘게 일을 했을 것이다.
무정식당의 주된 메뉴는 보신탕이다. 보신탕의 원 이름은 개장국이다. 개장국보다는 보신탕이라는 어감이 더 품위있게 느껴져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런데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때는 서양의 몇몇 나라들이 개장국을 먹는 야만인의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는 참가할 수 없다고 했다.
필자는 개장국을 먹는 사람은 야만인이라는 등식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것의 차이는 있겠지만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은 아니다. 개를 표기하는 한자(漢字)는 두 글자가 있다. 구(拘)와 견(犬)이다. 개장국의 재료는 구(拘)이지 견(犬)이 아니다.
무정식당의 발자취를 더듬어본다. 현재의 자리에 개장국 식당이 문을 연 것은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이다. 그런데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이런 일을 시작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실제로 김삼태씨는 집안 망신시키는 일을 한다고 웃어른에게 지팡이로 두들겨 맞기도 했다. 김삼태씨가 식당을 하던 때는 정식으로 간판을 내걸지도 않았다. 주인의 성격이 무뚝뚝하다고 해서 ‘뚝보집’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초가집’ ‘신작로 옆집’ ‘감나무집’ 등 부르는 이름이 여러개였다.
무정식당의 두번째 주인이 된 김용준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기 전에는 토목건설현장의 측량기사(測量技士)였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천직(天職)으로 생각했던 측량기사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건설현장에서 다이너마이트 발파실수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아내와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노가다’ 하는 남자는 별로 안 좋게 생각한다고 해서 무작정 사표를 내버렸습니다.”
그 뒤 주택공사, 무역회사에서 일을 했다. 생활은 그리 넉넉지 않았다. 그 무렵 아버지 김삼태씨가 상경을 한다. 아버지 김삼태씨는 20년 넘게 해오던 식당일을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 일을 이어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부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스스로도 떳떳치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아들에게 대물림해 주고 싶은 아버지는 안 계시겠지요.”
먼저 어머니에게 생각을 말했다. 어머니는 말도 못 붙이게 했고, 아내 역시도 반대였다. 여러 날을 고민하던 그는 용기를 내 아버지에게 생각을 털어 놓았다. 결국 아버지는 승낙을 했고, 한가지 다짐을 했다. 장사를 하되 도축(屠畜)은 하지 말라는 다짐이었다.
1989년, 그는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끝까지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힘들고 서러워도 참고 견디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돈 벌어서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무조건 며느리를 칭찬하고 예뻐해 주시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내려와서 2000년까지 11년 동안 우리 부부는 아버지 밑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했습니다.”
2001년, 창업주 김삼태씨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아들 김용준씨가 정식으로 식당일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그는 그야말로 돈을 많이 벌었다.
“돈이라는 건 열심히 노력해야 벌리는 것이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식당 일을 하면서부터는 꾸준히 매출이 향상되었습니다. 돈을 열심히 쫓아가면 적은 돈은 모아지지만 돈이 나를 쫓아와야 큰 돈이 모아진다고 하더군요. 아내는 제가 돈 씀씀이가 헤프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차피 부자가 될 팔자이니까 천천히 부자가 되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100원을 벌면 다 호주머니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70원 정도만 넣어도 충분하니까 어려운 사람이 와서 손 벌리면 얼른 드리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30원 정도는 내 돈이 아니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그는 실제로 어려운 이웃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싫어한다. 어려운 이웃의 치지를 헤아려 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일 뿐 떠들썩하게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창업 44년이 된 무정식당은 이제 단순한 ‘소문난 집’이 아니다. 전국에서 미식가(美食家)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찾는 음식명가(飮食名家)가 되었다.
“음식을 파는 사람이 첫째로 가져야 할 것은 양심입니다. 재료 구입은 제 눈으로 직접 확인 합니다. 최상의 재료 구입은 하늘에 대고 맹세한 일입니다. 다음으로 청결과 친절입니다. 이런 원칙들을 지키면 장사에 대한 자부심도 생깁니다. 종업원들에게 자부심을 갖고 정성과 친절을 다하되 자존심은 팔지 말자고 강조합니다. 양심을 지켜야 자부심이 생기고, 양심을 저버리면 자존심을 헐값에 팔아버리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는 중국산 개를 국내산으로 속여 판 죄로 구속되었다는 뜬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나쁜 소문이 나도는 것도 식당이 잘 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한다.
“억울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제가 알고 하늘이 아는 일인데 웃어 넘겨야지요.”
44년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무정식당 주인 김용준씨에게서 참으로 맛있는 이야기를 맛있게 잘 들었다. 그런데 아주 간명하게 말하자면 무정식당의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한 마디로 ‘된장’이라고 말한다.